Archive for the ‘Poem’ Category

기억할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기형도
http://suyunomo.net/?p=5454
■ http://suyunomo.net/?cat=7

Posted: April 1st, 2011
at 4:33a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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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 -
읽는사람 까지 설레이게 하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

■ 황지우

Posted: April 18th, 2010
at 5:40p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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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와
사랑하는 외투와
사랑하는 욕망과
사랑하는 헛기침과
빈방과
칙칙대는 라디오와
가물대는 그리움과
나란히 눕는다

어디선가 기웃이
소만한 꽃이
나를 들여다본다
어디서 기울어진 꽃인가
가만히 보니 꽃 뒤로
내 발바닥이 닿아 있다

■ 장석남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中

Posted: March 28th, 2010
at 11:06p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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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모습/안도현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 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
들어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 http://tumblr.com/xor7nr1da

Posted: March 21st, 2010
at 10:01p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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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Cantaville e l’amore appassionato.

쉽지 않지만, 살아야 하고
쉽지 않지만, 사랑해야 한다

아니.

우리는 언제나 살고있었고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네게 바래져갔다가
다시 내 색을 찾고
또 다시 바래져갔다가
내 색을 찾는다
그렇게 몇번이고 바래지면
이내 섞여 물들어져 버린다

내가 가진 색은 어디로
네가 가졌던 색은 어디로

결국 물들어져 버린 나

■ My Nostalgia No.54

Posted: March 15th, 2010
at 10:55p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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