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 -
이토록 반가운 시라니.
■ 박노해
모놀로그 + 모노그램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나는 전화기 버튼에 꽃혀 있었다
목에 심한 통증을 느껴 깨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죽은 벌레들을 뱉어냈다 간밤에 그녀의 #은 목구
멍에 살충제를 뿌려댔다 나는 그녀의 아틀리에로 갔지만
오늘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는 어제 그림을 그리
지 않았다
문 앞에는 아이들이 이빨로 직접 잡은 짐승들을 쌓아놓은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 얼룩. 얼룩… 신음 소리가 덧입혀
진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있었다
하늘에는 반지 모양이 태양이 열대의 식물을 쏟아내며 며
칠째 떠 있다 나는 혀를 뚫어 식물들의 노래르 듣는다
음악이 끝나면 목구멍에서 아기들이 토해졌다
아이들의 코에서 자라는 그녀의 손톱
또 하나의 둔주곡(遁走曲)
나는 나를 뒤에서 안아본다
■ 정재학_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우신다 中
微分 – 금기
i는 오르간의 건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기로 결심하
였다 E와 F 반음 사이의 틈에 손톱을 밀어 넣었다 대체
이곳엔 어떤 음이 있었던 것일까 그이 손가락은 스스로
투명한 검은 건반이 되는 것 이외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건반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i는 증
명사진처럼 차분한 얼굴로 몇 개의 이빨을 뽑아냈다 바
람 소리가 들려왔다 오르간 속의 바람은 자전거가 스
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의 세기를 벗어나지 않았
다 i는 오르간으로 들어가면서 내내 잃어버린 자전거를
생각했다 E와 F의 저편에서 톱날로 연주하는 듯한 -
아쟁 소래도 약간 섞인 듯한 – 신경질적이고 처연한 소
리가 들렸다 두 건반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음들이 숨겨져
있었다니…다행히 Eb와 F#이 그 음들을 간직하고 있
었다 추방된 음들은 너무 많은 밤을 껴입고 있어서 손가
락이 스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i는 바람과 격리
된 음과 음 틈을 애무하였다 그사이 뽑힌 건반들은 마
이너 코드의 모퉁이마다 자동소총을 배치했다 몇 년간
거의 쓰인 적이 없었던 양 끝의 건반들만이 반대했다 다
수결은 그걸로 끝이었다 집중사격은 손가락부터 시작되
었다 오르간에서 나오기 위해 오선지를 건드릴 때마다
i는 산산조각이 났다 i의 눈동자가 왼쪽으 고정된 틈
을 타 그의 얼굴은 바렘에 자꾸 번지고 있었다 i는 검붉
은 건반 몇 개를 토해 냈다 높은음자리표와 다리에 털이
자란 음표들이 i의 귀와 입술은 뜯어 먹었다 알레그로
모데라토 정도의 빠르기였다
- – -
어떤게 먼저였던가를 고민했던…
■ 정재학_광대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中
Posted: July 10th, 2011
at 12:22a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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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바다
나는 너의 바다에 뛰어든다
한없이 푸른 그 곳에서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며
내 젊은 날들을 깎아가겠지
바다는 기억을 보관하고
눈빛을 삼키며
출렁인다
어느날 갑자기 바닷길 가는법을 물으면
물어본다면
대답하겠지
바로지금, 바로여기
그렇게
나는 너의 바다에 뛰어든다
- – -
같은 시간에 있는듯한 50번대 이후의 시들.. 맘에든다
■ 2010
■ My Nostalgia No.55
Posted: June 30th, 2011
at 10:47pm by Joker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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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또는 이 별의 재구성
나하고 나 사이에 늙고 엉뚱한 종족들이 있지 내 별로
놀러오는 나들 나들 때문에 그 종족들은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불안했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사랑했지 난
정드는게 특기니까 하루가 영원 같고 영원이 하루같은
무협판타지 같은 날들이었어 난 그날들을 CD로 구웠지
구워진CD 속에서 난 무릎이 아팠어 너무 많은 감정을 과소비 하고
게다가 너무 많은 눈물을 삭제했으니까 수 만년 전부터
이 별은 아팠어 늙고 엉뚱한 종족들은 이 별이 종말을
전지구적으로 살포 하면서 우리 종족의 언어를 모두
쓰레기통에 넣고 서둘러 이별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
종족의 위대함은 휴지통이라는 아이콘에 있지 ‘복원’이란
단추를 내장하고 있는 그러니까 이별을 이 별로 굽거나 이
별을 이별로 굽는 따위의 일은 우리 종족에겐 식은 죽먹
기보다 쉬운 일이란 거지 고통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
나 고통을 받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 빅토리 플랑클,멋
지지? 이게 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이란 이런
엉터리 판타지 같은 이 시에 대한 키워드야, 친절하지?
- – -
재미있는 말 장난이 그리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는구나
■ 안현미_이별의 재구성 / 창비시선









